보험산업 고용·연금·소비 구조 전환...수익구조도 재편 가능성
정부가 정년을 65세까지 단계적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본격 검토하면서 보험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근로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소득 기반이 확대돼 연금·저축성보험 등 장기상품에는 긍정적이지만, 동시에 고령 근로자 증가로 인한 산재·상해 리스크 확대, 장기부채 관리 부담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보험료 수입 기간은 늘고 지급 개시 시점은 늦어지는 구조’로의 전환이 예상된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수익 안정성 강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 은퇴시점 늦춰지며 연금시장 재편 가능성
현재 생명보험사들이 설계한 주요 상품은 대부분 ‘60세 은퇴’를 기준으로 한다. 납입 기간이 60세 이전에 끝나고, 이후 연금이 개시되는 구조다.
하지만 정년이 65세로 연장될 경우 납입 기간이 5년가량 늘어나면서 보험료 수입이 늘고, 연금 개시 시점이 뒤로 밀리게 된다.
즉, 보험사의 부채 인식(연금 지급 부담)이 지연되고, 장기 현금흐름이 안정화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한 생명보험사 관계자는 “정년 연장은 단기적으로 보험사의 현금흐름에는 유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상품 설계와 금리 구조를 새로 짜야 하는 숙제를 안긴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은 중장기적으로 ‘은퇴 시점 재설계’형 상품의 경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65세 이후 개시 연금보험’, ‘늦은 은퇴 맞춤형 건강보험’ 등 퇴직 이후가 아니라 ‘퇴직 직전’을 대상으로 하는 하이브리드형 상품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정년 연장은 동시에 퇴직연금 운용기간 연장으로 이어져, 보험사가 운용하는 퇴직연금 자금의 체류 기간이 길어지는 ‘운용 여력 확대’ 효과도 낳는다.
■ 손해보험은 ‘고령 근로자 리스크’ 부담 커진다
정년이 65세로 늘어나면 산업 현장에는 60대 초반 근로자가 대폭 늘어난다.
제조·건설·운수업 등 고위험 업종에서는 산재·상해·질병 사고율이 높아지며 손해보험사의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단체상해보험, 근로자복지형 단체보험 등 기업 단위 계약에서 손해율 상승이 불가피할 수 있다.
보험업계에서는 “노령 근로자에 맞는 새로운 단체보험 모델을 만들어야 할 시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이러한 구조 변화는 새로운 시장 기회를 낳기도 한다.
고령 근로자의 안전보장과 복지를 위한 ‘고령자 전용 단체보험’ ‘근속형 상해보험’ ‘은퇴 전 건강보험’ 등 세분화된 상품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손보사의 전통적 자동차·화재 중심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 장기금리 리스크 확대…IFRS17 하 ‘부채 시가평가’ 부담
보험사 재무구조에는 복합적 변화가 예상된다.
정년 연장으로 인해 보험료 납입이 지속되는 기간이 늘면서 장기 현금유입은 증가하지만, 동시에 보험부채 만기가 길어지는 만큼 장기금리 변동에 대한 리스크도 커진다.
IFRS17 회계체계 아래에서는 보험부채가 시가로 평가되기 때문에, 장기금리가 하락할 경우 부채평가액이 커지고 자본비율(BSCR) 부담이 늘어난다.
따라서 정년연장 시대에는 보험사의 ALM(자산·부채 관리) 전략이 핵심 과제로 부상한다.
장기채권 비중을 늘리고, 대체투자 구조를 조정하는 등 금리 민감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재편이 불가피하다.
■ 소비·소득 패턴 변화가 ‘보험소비 행태’도 바꾼다
정년 연장은 단순히 근로기간의 문제가 아니라 소득주기 전체를 뒤흔드는 변수다.
은퇴 시점이 늦춰지면, 60대 초반까지도 보험료 납입 여력이 유지돼 저축성보험과 건강보장성보험의 추가 가입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60세 이후에도 소득이 유지되는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자산관리형 연금보험’ ‘은퇴 전 미니보장보험’ 같은 상품이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고용 구조의 고착화로 청년층의 불안정 고용이 장기화되면 단기형·모바일보험 중심의 젊은층 시장 성장세는 둔화될 수 있다.
■ 정책 연계 효과: 연금개혁·고령자고용정책과 맞물릴 듯
정년 65세 연장은 정부의 연금개혁 및 고령자 고용정책과 직결된다.
공적연금 수급 개시 시점을 65세로 맞추려는 정책 방향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보험산업 입장에서는 이 변화가 “공적연금과 민영연금의 연계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즉, 공적연금의 보장 공백을 보완하는 민영 연금·건강보험의 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정년 65세 시대에는 공적·사적보장 간의 역할분담이 새로 정립될 필요가 있다”며 “민영보험이 고령층 소득보장과 건강보장 인프라의 핵심축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 ‘이중 구조’ 속 새 시장 찾기
결국 65세 정년제는 보험산업에 ‘은퇴 리스크 완화’와 ‘고령 리스크 확대’라는 상반된 충격을 동시에 던지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생명보험사는 납입기간 연장과 연금 개시 지연으로 수익구조 안정화의 기회를 얻는 반면, 손해보험사는 고령 근로자 리스크 확대라는 새로운 과제를 맞게 된다.
또한, 보험사들은 IFRS17 체계에서 장기부채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금리 대응력 강화와 함께, 고령 근로자 전용 상품 개발 등 ‘고령사회 맞춤형 보험산업 구조’로의 진화를 요구받게 될 전망이다.
결국 정년 65세 시대의 보험업은 ‘더 오래 일하는 세대’를 위한 새로운 보장 시스템을 설계하는 산업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은퇴를 늦춘 세대가 원하는 건 단순한 연금이 아니라, “일하는 동안의 안전과 일한 이후의 존엄”을 함께 지켜주는 보험이다.
